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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리뷰

[소설/리뷰]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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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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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샀었지? 교보문고 구경갔을 때마다 눈에 띄었다가 결국 그냥 한 번 사봤던 것 같다. 양귀자 작가님이 누구신지, 모순 책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그냥 샀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왔는데 재밌었다. 책이 슥슥 읽히면서 중간중간에 정말 좋고 생각해볼게 많은 글귀가 많았다. 안진진이라는 주인공이 그 나이에 벌써 이렇게 생각이 깊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다 긍정하는 말은 아니지만, 긍정하거나 생각해볼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온전히 안진진의 시간이 지나가면서 안진진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스토리다. 그러면서 주변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안진진의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

 

제목 모순은 안진진이 바라보고 있는 인생의 관점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관점은 양귀자 작가님이 바라보고 있는 관점인 것 같다. 작가의 말에서 전했듯이 쌍둥이로 표현한 같은 사람의 다른 인생도, 사랑도, 사촌과 가족도, 안진진에게 생기는 <운수좋은 날> 같은 하루도 모두 모순이지 않을까.

 

다른 양귀자 작가의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찾아보는데 평이 갈리거나 좋지 않은 것들도 섞여있는 것 같다. 다음에는 잘 찾아보고 골라야겠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삶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씹을 줄만 알았지 즐기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에피소드란 맹랑한 것이 아니라 명랑한 것임에도.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빈약한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스물다섯, 결혼 적령기라는 사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 말고 내 삶의 부피를 늘려줄 만한 어떤 일이 내 앞에 있는 것도 아니다. 빈약한 인생을 걱정한다면 지금의 나로서는 결혼에 빠져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어리석은 판단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많은 시간 충분한 검토를 거치겠다는 각오만 열렬하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불행한 어머니에 대해, 행복한 이모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한껏 담담하게 말하고자 한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내 윗대의 상황이 좀 미묘하긴 했지만, 내 삶이 그것에 완전히 빚져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그러나, 그러나, 이런 말은 어떤가.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얼마 전 어떤 책을 읽다가 우연히 발견한 구절인데, 내게는 아주 훌륭한 충고가 되어준 말이었다. 내 삶을 변명하기 위해 어머니를 끌어댈 용기를 품게 한 것도 고백하자면 바로 이 구절 때문이었다.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나의 인생에 있어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존재였다. 나라는 개체는 이다지도 나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서 꼭 부끄러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깨달음,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들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다.

게다가 오늘 같은 날은 더욱 여기에 올 일이 아니었다. 오늘은 이모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겹친 날. 이모에게 특별한 날이면 나의 어머니에게도 똑같이 특별한 날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두 사람의 겹친 운명이었으니까.

 

어머니가 받을 상처를 염려했다기보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변명할 수 있는 말을 찾아내지 못해서였다. 잘못했다고, 내가 정말 나빴다고, 흑흑 흐느껴 울면서,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이 부끄러웠다고 비수 같은 진실을 토로하는 어리석음은 결코 범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임에 틀림없으니까.

어떻게 살아야 옳은 삶인지 그것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라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읽고 배운다. 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좋은 말씀들을 들을 기회는 사방천지에 차고 넘쳤다. 신문이나 잡지나 책, 그리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등장하여 가슴이 뻐근하도록 일일이 옳은 말씀만 하고 계신다. 모른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진모의 책임이었다. 내가 간섭하고 나설 일이 전혀 아니었다. 어려서 물불을 가리지 못할 때라면 누나로서 마땅히 챙기고 도와줘야 할 부분이 있었다. 그 몫이라면 나는 정말 성실하게 수행했다고 자부한다. 아버지는 살림을 때려 부수고, 어머니는 부서진 살림 장만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터로 뛰어나가야 했던 집이 바로 우리 가정이었다. 어머니가 진모를 위해 우윳값을 대었다면 나는 그 애를 위해 아낌없이 내 등짝을 제공했었다. 심지어는 그 애를 업고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 50년대도 아니면서 나는 내 유년을 그렇게 보냈다.

진모가 나 못지않은, 아니, 나를 훨씬 능가하는 문제아로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에도 나는 그 애의 삶에 참견하지 않았다. 진모의 삶은 진모의 것이었고 진진이의 삶은 진진이의 것이었다.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삶의 공식인가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었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누군가 내게 그런 실례의 발언을 하는 것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상처 받은 내 자존심이 용서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하면, 나의 그러한 주장들은 오류가 많은 것이었다. 아니,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지만, 그러나 진모에게는 누나의 인생이기도 하고 어머니에게는 딸의 인생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진모의 인생은 나의 남동생의 인생이다. 주체를 나로 놓고 보면, 그러면, 중요도가 확 달라진다. 조용히 입 다물고 구경만 할 수는 없다. 내 인생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나의 남동생의 인생도 가끔씩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어머니는 자신 있다는 듯 하하, 웃었다. 어머니의 웃음은 나날이 힘차진다. 어머니에 대해 연구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 불가사의한 활력일 것이었다. 전혀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자신의 활력을 재생산해서 삶에 투자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재생산 기능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젊어서는 그렇게도 넘치던 한숨과 탄식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삶에의 모진 집착뿐이다. 내 어머니는 날마다 쓰러지고 날마다 새로 태어난다.

어머니의 불가사의한 활력, 이것도 앞으로 내가 유심히 살펴야 할 생의 비밀이다. 어머니를 탐구하면, 탐구해서 분석하면, 혹시 어머니의 그치지 않는 활력을 표현할 적확한 말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어 첫걸음>을 들고 하하, 웃는 쉰둘의 어머니.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배운다고 진지하게 말하던 쉰둘의 이모. 겹쳐지는 두 영상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두 사람이 쌍둥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닮았다. 그러나 전혀 닮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어디가 닮았고 어디가 닮지 않았을까.......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 저켠에서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아버지를 말하는 일은 나에겐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단칼에 아버지를 해석해버리는 것이 나에겐 늘 의문이었다. 아버지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아버지 스스로도 사람들이 자신을 그런식으로 쉽게 판단하고 생각을 그쳐버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아무에게나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치욕이었다.

특히 아버지처럼 하지 않아도 좋을 생각까지 하느라 인생살이가 고달팠던 사람에게는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버지는 타인에 의해 한 번도 정확히 읽혀지지 않은 텍스트였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모독이었고 또한 아버지의 불행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아버지는 치욕에 예민했고, 자신에 대한 모독을 가장 못 견뎌한 사람이었다고. 이 진술만큼은 오류가 없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여기까지는 진실이다, 라고 나 스스로를 격려하고 나면 아버지에 대해서 조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는 술꾼이라 불렀고, 누구는 또 건달이라고 칭하였으며 혹자는 가끔 성격파탄자로 규정하였던 아버지에 대해. 그리고 지금은 주민등록 등본에 '행방불명'으로 기록되어 있는 아버지에 대해.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한 달은 모자란 시간 때문에 한없이 짧다. 또한,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한 달은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만큼 한없이 넉넉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 한 달 동안 사랑을 완성할 수도 있고 또한 사랑을 완전히 부숴버릴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싫어하는 사람은 이모가 아니라 이모부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 적잖이 이모 도움을 받은 것 때문에 자격지심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나와 진모가 어렸던 시절, 걸핏하면 한밤중에 이모가 달려와 우리 남매를 긴급 구조해서 이모 집으로 데려가곤 하던 그 무렵에 생긴 앙금이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다. 소동이 가라앉고 나면 다음날 어머니가 와서 우리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가야 했던 그 시절에 종종 보았던 이모부의 차가운 눈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술회를 그대로 옮기면 이런 것이었다.


어머니는 '살인'만 인정하고 '미수'는 무시해버렸다. 내가 '살인'은 무시하고 '미수'만 인정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나는 애써 어머니를 설득하지 않았다. 어머니야말로 가장 흥감하게 '미수'를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했다. '미수'가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쓰러져버렸을 테니까. '미수'가 아니었따면 어머니는 쓰러져버렸을 테니까.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애에 되풀이 나타나는 불행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극복되었다.

불행의 과장법, 그것이 어머니와 내가 다른 점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진저리를 치는 부분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과장법까지 동원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 기껏해야 불행뿐인 삶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몸서리를 칠 수는 있지만.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가.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릐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일에 확 트여버리면, 아주 뛰어나버리면, 바닷물이 시냇물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돌아누워 끙 낮잠을 자버리듯이 그렇게 시시해지는 것이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 아니었다.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것인가, 자, 여기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어쩌면 내 것이 당신 것보다 더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내 불행에 비하면 당신은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닌가.......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나 역시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이러이러한 일로 지금 죄수복을 입고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해줄 수 있었다면 김장우의 아픔은 훨씬 가벼워졌을 것인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몇번이나 망설였지만 결국 말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왜 그랬는지, 왜 김장우 앞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지 여행을 떠날 때까지 나는 정녕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마침내 나를 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은 더 의심해봐야 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모든 일들의 앞뒤를 꼼꼼이 더 살펴봐야 한다고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다.

 

나는 바다를 잊을 수 없어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세상의 모든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과거를 버릴 수 없는 것인지도.

 

"왜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어요?"

카메라가 없는데도 버릇처럼 이쪽저쪽으로 구도를 잡아보며 한참 동안 꽃 옆을 떠날 줄 모르는 김장우.

"있으면 찍으니까. 보지는 못하고 찍기만 하니까."

"그래요. 맞는 말이에요."

나는 김장우의 말을 이해했다.

"이유야 또 있지. 안진진이 있잖아. 옆에서 말도 해주고 같이 웃어주고 쉴 새 없이 숨소리를 내는 안진진이 있어서 순간순간이 충만할 텐데 뭣 때문에 카메라를 가져오겠니. 나는 이번 여행에서 사랑하는 꽃 이름을 부르는 대신 안진진의 이름만 열심히 부르기로 결심했어."

대답 대신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는다. 그렇게 말할 줄 아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사랑에는 몰입할 수 없었지만 바다는 온 정신을 다 바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는 말은 다 거짓이었다. 사랑은 바다만큼도 아름답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랑은 사랑이었다. 아름답지 않아도 내 속에 들어앉은 이 허허한 느낌은 분명 사랑이었다. 지금 내 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굴곡 심한 도로를 운전하고 있는 이 남자는 처음으로 내게 다가온 사랑이었다. 마음속으로 열두 번도 더 '안진진, 괜찮아?'라고 묻고 있을 이 남자를 통해 나는 앞으로 사랑을 배울 것이었다. 때로 추하고 때로는 서글프며 또한 가끔씩은 아름답기도 할 사랑을.......

 

그러나 한없이 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달리기만 할 줄 알고 멈출 줄은 모르는 자동차는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이듯이, 인생도 그런 것이었다. 언젠가는 멈추기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저 아래 나이트클럽에서 말야. 안진진이 날 때렸어. 기억 나? 내 뺨을 치고 내 등을 마구 두들겨 팼지. 날 가두지 말라고, 무섭다고 그랬어... 마구 큰소리로 외쳤어. 가두면 죽이겠다고까지 그랬지. 내가 안진진을 그렇게 괴롭혔나 생각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한번 물어보자. 안진진한테 나는 감옥이니?"

감옥? 간수? 내가 그랬다고?

아, 나는 전율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대사였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난동을 부리던 그날 밤, 아버지가 말했었다. 당신은 나를 가두는 간수 같았어, 당신은 몰라, 그 절망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내 속에 아버지가 있었다. 행방불명인 아버지가 내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온몸이 떨리는 것을 감추기 위해 나는 더욱 더 김장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를 안고 있는 김장우의 팔에도 더욱 힘이 가해졌다.

"대답해봐. 나, 너한테 감옥이 될 것 같아?"

"아니요. 절대로 아니에요. 내 말은, 그 말의 뜻은, 장우씨를 너무 사랑하게 될까봐 무섭다는 뜻이었어요. 정말이에요. 진심이에요."

"정말?"

"그래요. 어제 처음으로 확실히 알았거든요. 내가 지금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그래서 감당하기가 어려웠어요. 사랑은, 힘이 들어요."

그에게 거듭거듭 다짐했던 대로 내가 그에게 한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술이 깬 다음날 아침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하는 말들이 모두 다 진실이었듯이.

나는 그날 아침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와 진모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대적이었을 것임을.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이란,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거리에서나, 비어있는 모든 전화기 앞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전화의 구속은 점령군의 그것보다 훨씬 집요하다.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란 단 두 가지 종류로 간단히 나눌 수 있다. 전화벨이 울리면 그 혹은 그녀일 것 같고, 오래도록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면 고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란,

버스에서나 거리에서 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유행가의 가사에 시도 대도 없이 매료당하는 것이다. 특히 슬픈 유행가는 어김없이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의 무늬를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ㄷ르은 의식적으로든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이별을, 그것도 아주 슬픈 이별을 동경한다. 슬픈 사랑의 노래들 중에 명작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유행가는 차마 이별하지는 못하지만 이별을 꿈꾸는 모든 연인들을 위해 수도 없는 이별을 대신해준다. 유행가는 한때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대물림되는 우리의 유산이다.

 

사랑이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다. 자신의 얼굴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의 눈과 코와 입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는 나. 한없이 들여다보는 나.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 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 등이 바로 사랑이다.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지금 그가 품고 있는 나에 대한 사랑의 부피가 감소될 어떤 말도 절대 하고 싶지 않다. 그에게 감추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사랑이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은 결코 아니다. 김장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랑의 유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 욕망을 멈출 수가 없다. 이것이 사랑이다. 김장우와 함께 떠났던 서해바다에서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 장렬한 비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누추한 나는 너무나 부끄러운 존재였다. 부끄러움을 누더기처럼 걸치고 그토록이나 오래 기다려온 사랑 앞으로 걸어 나가고 싶지 않다. 저 바다가 푸른 눈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는 더욱.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을 보일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 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이럴 때는 내가 부자여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미안함을 덜어주기 위해서 나는 부자여야 옳았따. 그래서 나는 우리집의 곤궁함에 대해서는 더욱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막차를 타는 바람에 단골도 못 잡고, 늘어나는 재고와 까탈스러운 일본인 상대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는 내 어머니 속사정 따윌랑 절대 털어놓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남김없이 다 솔직해버리면 사랑이 누추해지니까. 사랑은 솔직함을 원하지 않으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 이게 아닌데 하는 의혹. 그 의혹은 조금 오래 지속되었다.

좋은 밤을 보내려면 확실한 예약 없이는 곤란해요, 라는 그 말, 그것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인생의 진리가 아니었을까.......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법이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버린 내 아버지처럼. 김장우에게도 알지 못하는 생의 다른 길이 운명적으로 예비되어 있을지 몰랐다. 지금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알아도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사랑조차도 넘쳐버리면 차라리 모자란 것보다 못한 일인 것을.


이모가 죽고도 세월은 흘렀다.

이모를 죽인 겨울이 지나고 봄은 무르익어서 사방에 꽃향기가 난만했다. 겨울이 있어 봄도 있다.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죽기 전에는 아무도 인생의 보잘것없는 삽화들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액자 안에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걸어놓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어머니는 여전히 행복했다. 이젠 완전히 누운 채로 대소변을 받아내게 하고 쉴 새 없이 헛소리를 해대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지루하지 않게 했다. 면회를 갈 때마다 도무지 철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들도 어머니의 삶을 지리멸렬한 것으로 떨어뜨리지 않게 도왔다. 부쩍 말수가 줄고 홀로 처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나, 안진진의 우울도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준다.

아버지 시중 때문에 결국 어머니는 가게에 점원 한 사람을 두었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에서 점원 월급까지 나가야 하니 그것 또한 어머니의 나날을 긴장으로 채워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더욱 바빠졌고 나날이 생기를 더해갔다. 아, 어머니의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모의 죽음이 나로 하여금 김장우의 손을 놓아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떤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떤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라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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