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격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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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들어온 신규 도서를 살펴보다가 책 표지에 있는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고르게 되었다.
옳은 방식으로 질문해야 답이 보인다,
내가 오랜 기간동안 마음에 품고 살고 있는 문장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것이다. 어쩌면 유명하기도 한 문장인데,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이끌어낸다."라는 말이다. 사실 처음 이 문장을 보고 마음에 새기게 된 이유는 평소에 질문을 잘 하지 않았던 나를 다그치기 위함이었다. '질문을 하자. 그리고 좋은 질문을 하자. 질문하는 것이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문장을 볼 때 '좋은 질문을 해야한다. 영양가있는 질문을 해야한다. 그리고 나 또한 좋은 질문을 유도할 책임이 있고 좋은 답변을 할 책임이 있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올바르게 질문하는 방법과 좋은 질문을 생각하는 과정을 알려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세미나나 회의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부할 때 필요한 그러한 스킬이 있을 줄 알았다. 일부는 이러한 내용도 있었지만 의외로 일상 대화에서 하는 질문에서도 어떻게 대화를 하고 질문을 시작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도 소개를 한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평소에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는지 생각해보고 있으면 좋은 내용이라고 납득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 대화하는 것도 돌아보기도 했다.
책을 다 읽었음에도 당장 나에게 질문하는 스킬이 레벨업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숙제가 많아졌다. 한번 질문을 할 때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더 꼼꼼해야 답변하는 입장에서도 좋아지고 그게 다시 나에게 좋은 피드백이 될 것이다. 좋은 질문, 옳은 질문을 하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이 주변을 관찰하고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의도를 나타내고 질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할 것 같다.
늘 그렇듯 아래는 책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상에 답은 없어"라고 단정하는 말을 반기지 않는다. '답'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열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호탕하게만 하는 말이면 더욱 그러하다. 답은 있다. 있으니까 답이라는 말이 있겠지. 단지 상대적이거나 변할 뿐이다. 그래서 답에 갇히면 곤란하다.
상대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답을 원하는가? 그러한 답을 두고 '진리'나 '공리'라고 따로 칭한다. 그러니 어차피 답도 없는데 뭣하러 질문하느냐는 게으름부터 떨쳐내자. 무엇보다 사람의 본성이 답을 알아내고 싶어한다. 알아내지 못하면 만들기라도 해야 적성이 풀린다. 물론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 필수인 '생각'에는 적지 않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나 '답'을 구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는 태도가 곧 사람의 됨됨이이자 인생으로 이어진다.
이 차이가 질문의 격을 결정한다
불평, 불만, 비난이거나 무턱대고 투척해서 뭐라도 걸려라 하는 말 미끼는 질문이 아니다. 솜씨 좋은 재단사라도 된 양 판단을 끝냈고 답을 정해 놓았기에 상대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다. 그러므로 질문이라 할 수 없다.
여기서 잘못된 질문의 특징이 드러난다. 잘못된 질문은 대화하기 싫게 만든다. 할 말 없게 만든다. 심지어 갈등이나 불화를 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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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통제하려는 위치에서 내려와 질문을 '중립적'으로 바꾸면 된다.
ex) "쟤 왜 저래?" → "쟤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옳은 질문은 상대에게서 말을 이끌어낸다. 알지 못한 생각을 알게 해준다.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이해의 폭을 넓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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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잘못된 질문은 없다'고 한다. 무엇에 대해서든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가지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질문에는 분명히 옳은 방식과 잘못된 방식이 존재한다. 잘못된 방식으로 질문하며 답을 찾을 수 없다.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면, 질문할 수 없다
질문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알아야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즉 질문의 수준은 '앎'에 달려 있다. 질문은 얼마나 모르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아는지를 드러낸다. 아무런 질문도 할 게 없다면 알아서가 아니라 몰라서, 혹은 알고 싶지 않아서일 수 있다.
'앎'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지점이다. 얼마나 부족한지, 무엇을 어떻게 잘못 알고 있는지 깨닫는 수낙ㄴ마다 앎이 시작된다. 여기에서 방향을 거스르거나 틀어주고, 확대하고, 파고들게 하는 도구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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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아는 것은 무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지의 주요 특징은 질문하지 않고 자꾸 답을 하려든다는 것이다. 잘 안다고 스스로 믿기에 타인의 말이나 생각에 관심도, 호기심이나 궁금증도 없다. 그저 답을 하려고만 든다. 그 답으로 상대를 설득하려거나 통제하려거나 가르치려 든다. 그러는 이유가 '상대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구태여 그 진심까지 의심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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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인터넷 플랙폼은 뇌의 외장하드다. 언제든 쉽게 연결할 수 있는 든든한 외장하다를 각자 지녔는데 어떻게 모르는 게 있을 수 있나. '남이 만든 표시' 덕분에 사람들은 아는 게 많아졌다. 착각하지 말자. 당신이 안다고 여기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인가, '아는 것처럼'인가.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고 추론해서 선택, 판단, 결정해야 할 사안을 인터넷 플랫폼에 위탁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놓고 자기가 똑똑하게 처리했다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나'라는 정체성은 어떠한 방식과 과정으로 생각, 탐구, 추론, 선택, 판단, 결정 등을 경험하느냐가 기억으로 켜켜이 저장되면서 형성된다. '남이 만든 표시'에 위탁한다면 그 정체성은 '남에게 있는 나'일 수 밖에 없다. '나'에게 '남'만 있고 '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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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문자 사용 반대를 주장한 것은 명백한 오류였지만 '기억력을 활용해 내부로부터 자력으로 기억하려는 대신 남이 만든 표시들에 의해 외부에서 기억해내려' 하는 현상이 어떤 여파를 불러올지에 대한 우려는 이 시대에 더욱 새길만하다. 인터넷 플랫폼에서 찾은 지식은 당신의 지식이 아니다.
당신이 질문하지 못하는 이유
한 번도 안해봤으면 물어서 하면 되지 않느냐 하고 반문할 수 있으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면 질문할 수 없다. 서로의 상식과 보통, 일반적이라는 기준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확인하는 차원에서 질문하자. 애매모호한 질문이나 애매모호한 답변의 결과는 애매모호한 책임소재다.
'알아서 하겠지'는 재미있는 말이다. 상대를 굳건히 신뢰하기에 따른다는 묵직한 의미일 때도 있지만 '네가 그 정도는 당연히 할 줄 알았어(그런데 안 하다니, 맙소사!)'일 때도 있으며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쓰는 게 귀찮아. 네가 알아서 하고 다 책임져' 일 때도 있으니 말이다. 어느 쪽이건 '알아서 하겠지'라고 여긴 사람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상식이나 보통, 일반적이라는 것의 기준이 자기와 같을 거라고 여기면 확인 질문을 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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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본성을 거스르는 대표적인 행위다. 집중해서 생각하고 요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편하고 질문하지 않으면 편하다. 내부나 외부에서 발갱한 현상이나 문제를 발견해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판에 박힌 대로 반복하거나 무시해버리면 질문할 것이 없다. 그 결과 더 많은 문제가 생겨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비효유렁이 발생한다. 기억하자. 인간의 뇌는 숨만 쉬고 있어도 수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기에 최대한 효율성을 추구한다. 그 결과 나타나는 대표적인 인지오류 중 하나인 인지편향은 쉽고 편할지 몰라도 인간의 정신을 화석으로 만든다. 질문은 화석화를 방지할 뿐 아니라 생각의 화석, 자신의 화석을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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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질문하고 싶어도 하지 않는, 혹은 못 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고 그중에는 '마땅찮아서'도 있을 것이다. 억지러 와서 앉아 있다거나, 상대가 내 질문에 답해줄 능력이 없어 보이거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컨디션이 저조하다든가.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컨디션이 저조하다든가. 그래서 묻고 싶은 게 있어도 묻고 싶지 않아서 관둔다. 또 자신과 관계가 없거나 관심이 없거나 반대로 자기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면 질문하지 못할 것이다. 한없이 가벼움을 추구하는 세상인지라 나 혼자 진지한 질문을 하면 우스갯거리나 될 거라는 생각도 한다.
이에 더해 의외의 복병이 있는데, 묻고 싶은 내용을 요약, 정리해서 핵심 어휘를 중심으로 분류하고 배치하는 등의 문장 구성을 할 줄 몰라서이다. 질문이란 내용을 요약 정리해서 간결한 문장으로 구사하는 힘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용을 요약하거나 정리하지 못하면 질문하는 문장을 만들기 힘들다. 이는 어휘력, 문해력과 관련이 있다. 언젠가 어휘력이 부족해서 겪는 일상의 불편함을 이렇게 표현한 댓글을 보았다. "머리에 언어가 없어요." 아무것도 안 하면 쇠퇴하는 인체와 뇌의 기능처럼 언어의 기능도 나날이 휘발된다.
질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5가지 효능
첫 번째 효능은 '답'이다. 질문하지 않으면 답을 들을 수 없다. 옳은 방식으로 질문하면 옳은 답을 찾는다. 잘못된 방식으로 질문하면 잘못된 답을 찾는다. 옳은 방식으로 질문하면 제대로 문제를 찾아 해결할 수 있고 잘못된 방식으로 질문하면 엉뚱한 데서 문제를 찾아 잘못된 답을 하고 잘못된 결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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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여러 가지라고 믿는 사람은 자기와 다른, 자기가 모르는 수많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존중하고, 귀 기울인다. 이를 바탕으로 심사숙고하고 선택, 결정한다. 그러지 못한 채, 더 솔직히 표현하면 그러고 싶지 않아서, 다른 의견 하나 듣지 않고 내리는 결정은 늘 미숙하고 어리석다. 옳은 방식의 질문의 가장 큰 효능은 지금까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 관점의 전환을 일으키고, 사고를 일깨운다. 현실과 핵심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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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의 질문은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쪽의 사고를 일깨운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질문으로 발화하면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명확해지고, 질문을 받는 사람은 몰랐던 것을 알아 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고력'이다. 그러니 질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세 번째 효능은 '관점의 전환'과 '사고력 키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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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상대에게 하는, 상대에 대한 질문은 호의와 관심의 척도이다. 네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고 싶어, 너를 이해하고 싶어, 너의 세계를 알고 싶어, 라는 마음이다
"얼마 전에 도코에 다녀왔어"라고 했다고 해보자. 이 대목에서 "나도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라거나 "나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왠지 가고 싶지가 않더라" 등으로 대화의 방향을 자기한테 트는 이들이 있다. 그러지 말고 계속 상대에게 대화의 초점을 맞추자. 이왕이면 "도쿄 어땠어? 좋았어?" 같은 광범위한 질문 말고 "너 우동 좋아하잖아. 도쿄에서 먹어봤어?"라든가 "네가 일본 애니에 관심이 많잖아. OOOO에도 갔어" 하는 식으로 평소 알고 있는 상대에 대한 정보를 포함시켜서 구체적으로 묻는 것이 좋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누구라도 집중해서 경청하고, 마음을 열기 마련이다. 기꺼이 정보도 공유할 것이다. 대화는 '자기 말 + 자기 말'이 아니라 '질문 + 응답'이다. 인터뷰도 아닌데 질문만 넙죽 받아 답하고 본인은 질문하지 않는 형태도 대화라 할 수 없다.
알고 지낸 지 오래 되었는데 정작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관계가 있다면 질문을 하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대화 내내 상대에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혹은 기껏 질문하고선 답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할 말만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비난이나 험담, 조언이나 충고 역시 자기 생각이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의 범주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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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질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네 번째 효능은 '유대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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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상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존재감을 환기시킨다. 이때 사앧의 자존심을 훼손하지 않고 맞춤한 질문을 찾아내는 것 또한 시니어의 자질이라 하겠다. 상대의 능력과 수준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이런 하나의 주장에 '그래봐야 쓸데없는 소리 듣느라 회의 시간만 길어진다'고 반박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성원의 생각을 묻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는 조직, 대세를 좇으면 속 편하다는 생각이 암암리에 상식이 되어버린 조직에 활기가 있을 리 없고 전망이 밝을 리 없다.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질문하고 답변에 귀 기울이기를 습관화하자. 나이나 직급이 높은 이가 낮은 이에게뿐 아니라 역으로도 해보자. 예를 들어 경허밍 없는 업무를 맡았을 때 무턱대고 "해본 적 없어서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해요?"라고 질문하지 말고 충분히 알아보고 고민한 다음 예의를 갖춰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말이다. 흐뭇해하며 도움을 주려할 것이다. 무엇보다 경험이나 짓기이 부족하면서 일절 조언을 구하지 않고 혼자 해내려다 사고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다. 다행히 성공해도 문제다. 혼자서도 잘하는구나 싶어 더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포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질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섯 번째 효능은 '실수나 잘못에 대한 예방'이다.
어린이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차용해 질문하라
어린이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은 아름답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백지 상태에서 묻고 들은 답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그러나 "이게 뭐예요?, "왜요?", "어떻게 해요?" 등은 호기심이나 궁금증일 뿐, 질문으로서 아직 부족하다. 질문은 호기시밍나 궁금증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호기심이나 궁금증마저 시들해질 것이다. 게다가 얼느이 되면 딱히 호기심이나 궁금증이 없어도 앞서 언급한 질문의 효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질문을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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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없으면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없다. 이 말을 뒤집으면 질문을 하면 생각하게 되고, 생각을 하면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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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질문에 있따. "꽃은 왜 필까?"가 아직 질문이 되지 못한, 보이는 그대로의 궁금증이라서다. 이 궁금증을 바탕으로 더 나은 답을 얻기 위한, 관점을 전환시키기 위한,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질문을 새로 구성해야 한다.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이러하다. 어린이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담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어른의 뻔하고 상식적인 답을 합쳐서 하나로 만들기. "꽃은 왜 필까?"와 "번식하기 위해서"를 합치면 "식물은 번식하기 위한 방법으로 왜 꽃을 피울까?"라는 질문이 된다.
그런데 이대로 질문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질문이 타당한가, 이다. 특히 우리가 뻔하다고 여기는 것이 어떤 경우에도 진리인지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질문이 파생한다. 여기서는 식물이 번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 맞는가, 가 되겠다. 질문 자체가 합당한지 검토하는 과정은 언제나 중요하다.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답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확인하고 바로잡거나 보완하거나 중립화할 수 있다.
그래서 검토하면, 식물이 번식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씨앗을 통한 번식 외에는 인위적이고, 인위적인 방식은 원래 하려던 질문의 의도에서 어긋나므로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정말 꽃은 왜 피는 거지, 하고. 이때 물음은 처음에 했던 "꽃은 왜 필까?"와 같은 말이지만 더 이상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비로소 질문이다. 처음에 없던, 더 나은 답을 얻고 싶은 의도가 생겼으므로. 무엇보다 고정관념 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말간 눈이 되었다. 이런 눈으로 답을 찾기 시작하면 차례대로 차근차근 만날 새롭고 다양한 내용을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뱉어내거나 하지 않고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다듬을 질문은 이러하다.
"식물이 번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른 방식이 아닌) 꽃 피우기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번에는 어른의 또다른 뻔한 답, "필 때가 되니까 피었겠지"를 합쳐보자. "꽃은 왜 필까?"와 "필 때가 되니까"를 있는 그대로 합치면 "꽃은 필 때가 되면 왜 필까?" 하는 질문이 된다. 그러면 도돌이표 답을 만들거나 뭔 헛소리냐는 눈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식의 질문은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유발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흥미롭지 않다. 그 이유는 '꽃은 필 때가 되면 핀다'가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 죽는다'와 같은 수준의 '명증'이기 때문이다. 명증이나 공리는 절대로 틀릴 수 없는 지식이나 정보라서 논증에서 이를 의심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대신 명증이나 공리를 대전제로 다른 명제를 추론하고 증명할 수 있는데 이를 '필연적 연역법'이라고 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구사하고 있다.
연역법에서는 전제가 참이면 결론이 반드시 참이다. 전제에 이미 명증이나 공리 등과 같은 결로닝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역법으로 도출한 결론은 필연적으로 참이다.
반면에 귀납법에서는 전제가 참이라도 결론이 반드시 참은 아니다. 전제가 명증이나 공리 등에서 벗어나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귀납법으로 도출한 결론은 개연적이다. 이러한 차이로 연역법은 주로 결론을 다른 방식으로 논증하는 데 쓰고 귀납법은 지식 등을 확장하는 데 쓴다.
꽃이 필 때가 되면 피는 것은 공리이기 때문에 필 때가 되면 핀다. 공리를 두고 꽃이 왜 피냐고 물으면 동어반복밖에 할 수 없다. 기대하는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질문을 바꾸면 된다.
"식물은 왜 필 때가 되면 어떻게 꽃을 피울까?"
'왜'에서 '어떻게'로만 바꿨을 뿐인데 두뇌를 자극한다. 5년 4개월 동안 매일 새벽 질문을 했던 경험자로서 약속할 수 있다. 올바른 방식으로 물은 한 개의 단순한 질문이 여러 개의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맥락을 파악해 질문하라
맥락을 파악하려면 '유추'가 더 필요하다. 유추력을 갖추면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몰라도 맥락을 이해할 수 있고, 낯선 비유나 은유를 접하더라도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이해하기 때문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우리는 맥락에 맞는 낯선 단어와 맥락에 맞지 않는 익숙한 단어 중 전자를 더 쉽게 이해한다. 더구나 한국어뿐 아니라 어느 나라든 동음이의어가 많아 맥락을 살피지 않으면 의미가 달라질 뿐 아니라 엉뚱하게 오해할 수 있다.
'맥락 파악하기'는 모든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한다. 심지어 텍스트가 이상하거나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한편으로 어떤 질문이나 답변에서건 자기 감정에만 충실하면 맥락에서 벗어나기 쉽다. 관련해 대표적인 사례가 역사적으로나 개인적ㅇ로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렇게 반응하는 경우이다. "정말 그랬어?" "나는 몰랐어." "나도 힘들어." "사는 건 다 힘들어." "원래 인간이 다 그래." 공감하고 못하고는 둘째치고 맥락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어디에나 갖다 쓸 수 있는 반응은 어디에도 적절한 응답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핵심 어휘를 정립하라
평균 온도 섭씨 영하 55도, 공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 당연히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곳, 바로 '화성'이다. 화성에 정착해 살아갈 주민을 뽑는다는 '마스 원 프로젝트' 모집 공고에 세계 각국에서 10만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이 프로젝트에는 조건이 있다. 한 번 더나면 돌아올 수 없으며 그곳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편도 티켓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10만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린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구를 떠나고 싶은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의미일까?
위의 이야기를 읽고 "마스 원 프로젝트를 추진한 마스 원 벤처스가 파산한 게 언제적인데! 처음부터 현실성이 없었어"라고 정보나 지식을 언급하는 반응은 맥락에서 벗어난다. 분위기가 일순간에 어색해지는 상황은 주로 맥락을 잘못 짚어 반응할 때 발생한다. 맥락을 빨리 파악하는 비결은 핵심 어휘를 찾아내는 것이다. 위에서 핵심 어휘는 무엇일까?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화성? 마스 원 프로젝트? 분량과 핵심 어휘는 관계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위 이야기의 맥락은 지구를 영원히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지 모른다는, 화자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마스 원 프로젝트는 그 계기일 뿐이다. 지구를 영원히 떠나고 싶은 사람이 많은지 아닌지, 그 일이 가능할지 아닌지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이 대목에서 중요하지 않다. 화자의 관심사는 화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 어휘는 '떠나다'이다. 그러니 "너도 지구를 떠나고 싶을 때가 있어?"라는 식으로 핵심 어휘를 포함시켜 질문하는 것이 맥락에 맞다. 우리는 어떤 말을 들으면 누르고 있던 용수철에서 손을 뗐을 때 튀어 오르는 속도로 빨리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또 상대가 하는 말이나 생각이 자기와 비슷하려니 일반화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반응하는 경향도 있다. 그 결과 뻔한 말만 주고 받는다. 핵심 어휘를 짚어내 응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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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에 올라타느냐, 벗어냐느냐이다. 또한 정확한 의사소통은 맥락 안에서 어휘를 선택하고 사용할 때 가능하다. 그러려면 우선 상대가 하는 말을 집중해서 경청하고 핵심 어휘를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핵심 어휘를 담은 문장을 만들어 응답하거나 질문한다. 이는 문해력(Literacy)과 연관이 있다. 문해력이 뛰어나면 수월하고, 그렇지 못하면 다소 어려움을 겪는다. 문해력에 대한 정의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애초에 '문해'란 문자를 읽고 쓰는 일을 뜻했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는 문해력이 낮은 백성들을 위해서였다. 그러다 점차 범위가 넓어져 2004년 유네스코는 문해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문해력(Literacy)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하여 정보를 찾아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창작하고, 소통하고, 계산하는 능력
글을 읽고 표기할 수 있어도 이해하고 표혀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즉 문해력이 낮으면 실질문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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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말에서 핵심 어휘를 찾아내고 맥락 안에서 어휘 선택을 해 질문하자. 질문하기 전에 핵심 어휘를 정립하면 질문을 통해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질문의 목적과 의도가 명확해진다.
질문의 의도와 목적을 명확히 하라
질문을 정리해서 다시 하라는 요청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질문을 통해 알고 싶은 것, 혹은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서랍 안을 헤집는 것처럼 핵심을 찾아낸다. 더불어 사람의 말은 동시화면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자. 한 개의 문장으로 한 가지만 물을 수 있고, 한 개의 문장에 한 가지에 대해서만 답할 수 있다. 한개의 문장에 여러 가지의 질문을 뒤섞지 말자.
질문하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 떠오르는 대로 다 적는다
- (1)에서 적은 글을 핵심 어휘를 기준으로 모두 단문으로 분리시킨다
- (2)에서 분리한 단문들을 놓고 알고 싶은 순서대로 번호를 매긴다.
- 각각의 단문들을 보면서 질문하고 싶은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 (2)의 단문들을 의문사를 붙인 의문문으로 바꾼다. 단문이니 질문도 짧고, 한 번에 한 가지만 물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 한 번에 한 가지씩 묻는다. 질무낳는 의도를 밝히면 훨씬 수월하게 질문의 의도나 목적에 부합한 내용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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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의도와 목적을 분명히 해두고 질문하기가 배었고, 일상에서 활용하니 썩 효율적이다. 앞서 맥락과 달리 질문에서는 솔직하고 담백하게 의도와 목적을 숨기지 않고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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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와 목적을 명확히 해두고 핵심 어휘를 강조하는 것이 방법이 되겠다. 그렇게 하면 질문은 저절로 의문사가 들어간 의문문으로 완성돼 발화된다.
범주를 좁히고 구체적으로 질문하라
지금까지 '옳은 방식으로 질문하는 여섯 가지 방법'을 소개했고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어린이의 호기심, 궁금증을 차용한다.
- 의문사를 사용한다.
- 맥락을 파악한다.
- 핵심 어휘를 정립한다.
- 질문의 의도와 목적을 명확히 한다.
- 범주를 좁히고 맥락을 제시하며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생각을 넓히는 질문법
데카르트의 질문법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언이 <방법서설>에 나온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만났던 이 경구가 요즘 내게는 경고로 들란다. "생각하기를 거부하면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될 거야. 그러다가 존재하기를 포기하겠지"라고 말이다. 여기서 존재하기를 포기한다는 의미는 인간답게, 사람답게 존재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면 인류의 역사도 머잖아 끝날 것이다. 생각하기는 우리가 사람답게 존재하기 위한,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
우리에게 익숙한 2차원 좌표계는 데카르트가 발명했다. 데카르트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을 발생했고 좌표를 기반으로 다음과 같이 만들었다.
데카르트의 질문은 '이 일이 일어나면(일어나지 않으면)'과 '어떤 일이 일어날까(일어나지 않을까)'라는 두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복문이다. 오른쪽 상단 1사분면부터 차례대로 출발하면 아래와 같다.
- 이 일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 이 일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각 질문에 대해 즉헝ㅈ거으로 답하지 말고 충분히 생각하고 답을 기입한다. 데카르트의 질문은 어던 상황이나 경우든 네 가지 다른 방식으로 추론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하면 한쪽 관점으로만 과도하게 생각하는 것을 방지하고 여러 관점에서 두루 살필 수 있다. 질문과 답으로 완성된 표를 바라보면 스스로의 모순이라든가 꼭 피하고 싶은 상황, 반대로 진심으로 원하는 상황이 보일 것이다. 데카르트 질문법은 범주를 좁혀 구체적으로 질문하는 좋은 방법이다.
피터 드러커의 질문법
또 다른 유명한 질문법은 피터 드러커가 고안한 자가진단 프로세스, '피터 드러커의 질문'이다. 피터 드러커는 현대 ㄱ여영학을 창시한 학자이자 전 세계 비즈니맨의 멘토로서 조직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 원칙을 질문 형태로 정리했다. 그는 컨설턴트로 일하던 시절, 경영자들에게 늘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심각한 오류는 잘못된 질문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위험한 것은 잘못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피터 더러커는 다음 다섯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따면 조직을 효과적으로 경영할 수 있다고 보았다.
- 미션: 왜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고객: 반드시 만족시켜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 고객가치: 그들은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
- 결과: 어떤 결과가 필요하며, 그거슨 무엇을 의미하는가?
- 계획: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AI 시대, 답보다 질문이 중요한 세상
사회가 겪는 기술의 변화를 개인이 피해갈 수 없다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한편에 늘 남아 있었는데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몽십야>에 나오는 이 대목이 20여 년 넘도록 내가 나와 벌인 논란에 종결을 지었다.
그 남자는 왜 큰 배의 승객이 되어 배를 타고 있는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배는 배를 추월해서 지나가 앞쪽에서 지고 있는 태양의 뒤를 쫓아가겠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선장에게 행선지를 물어보았지만 대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배를 타고 있는 것은 대부분 외국인입니다. 남자는 불안하기도 하고 그대로 배에 타고 있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죽기로 결심하고 바도로 뛰어들기로 결심하빈다. 그러나 발이 갑판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냥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합니다. 높은 갑판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슬로모션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에 남자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배를 그냥 타고 있었던 편이 나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끝없는 후회와 공포를 느끼며 검은 파도 속으로 조용히 떨어져' 갑니다. 이 이야기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시대의 흐름에 말리는 것이 싫다고 해서 구시대에 매달리는 것이 더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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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오류, 허위를 알아보는지 그렇지 못한지에 따라, 원하는 정보에 대한 콘텍스트와 리터러시를 갖췄는지 그렇지 못한지에 따라, 인공지능을 활용해 올바르고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취할 수 있는 범위나 수준이 크게 차이 날 것이다. 여기에서 나온 새로운 화두가 '이제는 답보다 질문이 중요하다'이다. 구체적으로 '답하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하다'이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대규모언어모델 인공지능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에릭 슈미트가 10년 후에는 암환자가 사라지는데 인공지능이 스스로 그 방법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라고 호언장담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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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두 가지 숙제가 주어진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인공지능이 내놓는 대답이 올바른지 판단할 수 있느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가지는 지난 수천 년에 걸쳐 인류가 쌓아올린 인문학과 상통한다.
'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으로 질문하라
'왜'라고 묻고 답하기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왜 왜라고 묻고 있지?'라는 질문까지도 필요하다. 그런데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거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싶다면 '왜'가 아니라 다르게 물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으로 질문하라!
'어떻게 하면'은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다. '어떻게 하면 ~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뜻이다. 긍정의 질문이다. '어떻게 하면'과 '만약'을 합치면 해결책에 대한 모색이 분격적으로 시작한다. 오노 다이이치가 '다섯 번의 왜 기법'을 발상한 것도 이 질문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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