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네이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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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 한 달은 된 것 같은데 이제야 쓴다. 이래저래 개인사로 바빴어서 미루다 보니까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정리를 하지 않더라도 그냥 끄적끄적만 할걸 후회된다.
아무튼 회사 독서토론을 했을 때 한강 작가 소설 중에서 다른 것들 보다 치유가 된다는 후기들이 있었어서 기대를 했었다. 사람들 모두 다른 책들은 너무 읽기 힘들었는데 이 책이 쉬운 편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도 다른 책은 읽기 힘들었어서 얘는 다른 결인 것 같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나는 이 책도 읽기 쉽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유서를 쓰고 있던 주인공부터 이상한 주인공의 꿈, 이상한 주인공의 친구, 이상한 주인공의 친구의 집에서의 상황 등이 너무 신경쓰였다.
다들 어떻게 이게 힐링되는 책이었지? 한강 작가님이야 이전 작들에서 너무 힘들었어서 이번에서 치유받았다는게.. 그나마 이해는 되는데.. 다른 분들은 이걸 어떻게 해석한건지 너무 궁금하다. 지금 독서토론이 없었어서 아쉬웠다.
전쟁이라든가 어려운 배경들이 자꾸 나오니 점점 힘들었다. 여전히 전작들처럼 메타포들도 많고 비춰보여주는 모습들도 많고 적나라한 묘사들도 많았다. 또한 특유의 자세하게 보여지는 상상을 자극하는 말들은 여전했다.
아무튼 좋은 글귀들은 있던 것 같은데 읽기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래는 그냥 글귀들만 적어놓으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반쯤 넘어진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아, 당신처럼.
살고 싶어서 너를 떠나는 거야.
사는 것같이 살고 싶어서.
함박눈을 맞으며 허리를 굽힌 채 걷는 노인의 모습이 차창 너머로 멀어진다. 그가 더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고개를 꺾고 돌아본다.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나의 혈육도 지인도 아니다. 잠시 나란히 서 있었을 뿐인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작별을 한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는가?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들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 눈꺼풀에 쌓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순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새들이 건강해 보이는 건 믿을 수 없어, 경하야.
끝까지 고개를 들고 횃대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면 이미 죽은거야.
부서질 듯 문과 창문들이 덜컨거린다. 바람이 아닌지 모른다. 정말 누가 온 건지도 모른다. 집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려고. 찌르고 불태우려고. 과녁 옷을 입혀 나무에 묶으려고. 톱날 같은 소매를 휘두르는 저 검은 나무에.
죽으러 왔구나, 열에 들떠 나는 생각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어.
베어지고 구멍 뚫리려고, 목을 졸리고 불에 타려고 왔다. 불꽃을 뿜으며 무너져 앉을 이 집으로.
조각난 거인의 몸처럼 겹겹이 포개져 누운 나무들 곁으로.
제목이 뭐야?
밀폐용기에 담긴 것을 나무 숟가락으로 덜어 주전자에 넣다 말고 인선이 물었다.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그녀는 주전자에 생수를 부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주전자와 머그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며 인선이 되뇌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왜 나한테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한 걸까? 아프다 해도 나는 천적이 아닌데.
두 개의 그 붉은 구멍을 응시하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눈동자 같은 그것들을 지켜보면 뜨거운 말이 쇳물같이 흘러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우린 대화를 나눴어, 너도 봤지.
작업대에서 내려서며 인선이 물었다.
사실은 어떤 말도 나눠진 적 없었던 걸까? 새는 새였고, 나는 인간이었을 뿐일까?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다시 목장갑을 끼고 난로의 달궈진 문을 열었다. 부지깽이로 나무토막들을 뒤집자 불티가 튀었다. 불꽃의 열기가 내 얼굴까지 끼쳐왔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인선의 목소리가 그 열기 사이로 번졌다.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인선이 몸을 일으키자 그녀의 그림자가 천장까지 솟아오른다. 그녀가 책들을 상자에 담고 뚜껑을 닫는 동작에 맞춰 그림자가 더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낟.
방에 같이 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내가 함게 가리란 걸 의심하지 않는 듯 그녀가 혼잣말을 한다. 초를 어떻게 하지.
인선은 싱크대로 걸어가 한 손에 종이텁을, 다른 손에 가위를 들고 돌아온다. 컵의 바닥면을 십자로 오려 틈을 낸다. 촛농으로 고정했던 초를 떼어내 그곳에 끼우자, 흰 코팅 종이를 투과해 나온 불빛이 은은해진다.
같이 가자.
나는 일어서지 않는다.
같이 보고 싶은 게 있어.
등신대의 두 배에 가까운 인선의 그림자가 천장의 흰 벽지 위로 일렁이며 다가온다. 내가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선 건 그 그림자가 멈추길 원햇기 때문이다. 엎지른 먹처럼 번져와 내 그림자를 삼키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촛농에 잠겨 있던 심지가 연기를 뿜었다. 깜박이던 불티가 꺼졌다.
괜찮아. 나한테 불이 있어.
인선이 있는 쪽의 어둠을 향해 나는 말했다. 상체를 일으켜 주머니 속 성냥갑을 꺼냈다. 거칠거칠한 마찰면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거기 성냥개비를 부딪치자 불티와 함께 불꽃이 일었다. 황 타는 냄새가 번져왔다. 촛농에 잠긴 심지를 꺼내 불꽃을 옮겼지만 곧 꺼졌다. 엄지손톱까지 타들어온 성냥개비를 흔들어 끄자 다시 어둠이 모든 걸 지웠다. 인선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눈더미 너머에서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사라지지 마.
불이 당겨지면 네 손을 잡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눈을 허물고 기어가 네 얼굴에 쌓인 눈을 닦을 거다. 내 손가락을 이로 갈라 피를 주겠다.
하지만 네 손이 잡히지 않는다면, 넌 지금 너의 병상에서 눈을 뜬 거야.
다시 환부에 바늘이 꽂히는 곳에서. 피와 전류가 함께 흐르는 곳에서.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고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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